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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반세기 전, 이 땅에 처음 고속도로가 등장했습니다.
개발의 시대, 한국도로공사는 국가 경제와 산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며
국민과 함께 위대한 도전으로 기적의 역사를 이뤄왔습니다.

1969 2.15 한국도로공사 창립

경인고속도로 건설이 진행 중이던 1968년 7월부터 정부에서는 고속도로 건설과 유지관리를 담당할 공기업의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경인고속도로 건설자금을 제공하기로 한 아시아개발은행에서 고속도로 건설 및 유지관리 담당 공기업 설립을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에 정부는 고속도로 관리기구 설립을 서둘러 진행했고, 1968년 12월 28일 한국도로공사 법안 국회 의결, 1969년 1월 17일 법률공포를 거쳐 1969년 2월 15일 창립식을 거행하며 한국도로공사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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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3. 21 경인고속도로 운영권 인수

1968년 12월 21일 개통한 경인고속도로는 당초 경인고속도로주식회사가 건설 및 유지관리를 맡았다. 하지만 이후 한국도로공사가 설립되면서 예정에 따라 1970년 3월 21일자로 경인고속도로의 운영 및 관리업무는 한국도로공사가 담당하게 되었다.

경인고속도로 운영권 인수

4.25 한국도로공사 배구단 창단

한국도로공사는 국민체육진흥에 이바지하고 활기찬 기업문화를 구축하기 위하여 1970년 4월 여자 실업배구단을 창단하여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명문구단으로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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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

장비도 자재도 기술도 턱없이 부족한 열악한 상황에서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착수한 이래 3년 만에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을 개통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비용으로 건설한 고속도로 사례였다. 준공식에 참석한 대통령, 공사관계자, 국민들 모두가 벅차오르는 감격과 쏟아지는 희망의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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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고속도로 상 최초의 휴게소, 주유소 개소

고속도로는 별도의 진출입시설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노선 상에 휴게소 등 편의시설을 구축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기 고속도로 건설 당시에는 재정이 부족하여 편의시설을 구축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임시방편으로 간이매점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이후 추풍령휴게소를 시작으로 정식 휴게소와 주유소를 설치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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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11.14 호남남해고속도로 대전~전주~부산 구간 완전개통

한국도로공사는 대(大)국토 건설계획에 따라 호남남해고속도로 건설을 진행하였다. 이는 전 국토를 1일 생활권으로 묶어 균형개발을 촉진함과 동시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여 소통하게 한다는 의미도 가졌다. 정부는 이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여수, 광양, 창원 등을 대규모 공업권역으로 개발하여 고속도로가 산업의 동맥 역할을 하도록 조치하였다. 1970년 12월에 대전~전주 구간이 먼저 개통되었고, 1973년 전주~부산 구간을 개통하며 완전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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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본사 금토동 사옥 준공 및 이전

한국도로공사는 창립 이후 경인고속도로 인수, 경부고속도로 완전 개통 등으로 업무가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본사 직원도 빠르게 수가 늘어났다. 또한 1972년에는 수도권 인구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국영기업체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라는 정부 지시에 따라 사옥을 이전해야 했다. 이에 한국도로공사는 1973년 1월 25일 사옥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옥 신축을 추진했다. 그해 3월에는 성남시 금토동 지역을 이전지역으로 확정하고 6월에 착공하여 1973년 12월 28일에 준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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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2.13 전주 묘포장 개설

고속도로 건설 초기에는 예산의 부족으로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경향이 있었고, 시중의 조경수목 가격도 높았다. 이에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유휴지(노선 확장 예정지 등)에 전주를 비롯한 7개 지역에 묘포장을 개장하여 조경수목을 자체 공급했다. 1995년에는 '전주 묘포장'에서 '전주 수목원'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1998년부터는 생산 위주의 수목원에서 탈피하여 조경 시험연구와 교육 등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해 왔다. 지금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휴식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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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10.14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서울과 강릉을 잇는 영동고속도로는 국내 고속도로 건설 초기부터 논의되어 온 노선이었다. 정부는 1968년부터 영동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으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타당성 조사결과에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공사가 지연되었다. 이에 정부는 신갈~새말 구간을 국내재원으로 먼저 건설하고, 이후 IBRD 협의를 거쳐 1975년에 잔여구간인 새말~강릉 구간과 강릉~동해 구간을 개통하였다. 영동동해고속도로 구간 대부분이 해발 500~900m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연과의 사투 끝에 공사를 완료함으로써 고속도로로 동서를 횡단하는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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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12.17 구마고속도로 대구~마산 구간 개통

정부는 중화학공업정책의 일환으로 창원에 기계공업단지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창원과 내륙을 잇는 도로망이 미비하여 정부는 서둘러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구마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다. 구마고속도로는 1977년 개통 이후 남해안 임해공역지역의 발전, 지방도시 육성, 수송비 절감 등 수송 구조 개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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